| 눈으로 만난 김연수 "그는 천생 작가" | |||
묘한 구조의 극장 안, 출입구와 마주한 무대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의자. 기대로 반짝이는 수십 쌍의 눈이 조명기보다 더 밝은 빛을 발할 무렵. 김연수 작가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이야기의 긍정적인 효능’을 믿는 작가는 자신처럼, 혹은 예수나 석가처럼 ‘무원고립’을 경험하고, 그 경험 끝에 다시 세상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과 순간이 전부라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조리 끌어다 소설 안에 넣어보고 싶었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두 장의 사진-입체 누드 사진과 노을 사진-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진들을 설명하는 소설을 썼다. 사진에 얽힌 실제 이야기가 어떤 것이든,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어 사진에 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늘 작가의 가슴에 오래 남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찡그리거나 놀란 표정 등이다. 그런 표정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는 ‘천생 작가’ 김연수는 이날 자신의 과거 한 귀퉁이의 이야기도 풀어놨다. 사연은 이랬다. <7번 국도>를 발표하고 인터뷰 답안까지 준비했지만 단 한건의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지 않았던 일, 신문에 기사 몇 줄 넣어줬다며 주간지 6개월 치를 정기구독 하라는 바람에 얼떨결에 신청하고 끊지 못해 곤혹을 치른 일. 독자들의 무반응에 힘이 빠지던 세월이었다. 자신의 재능에 의심을 품던 그 시절, 다니던 여성지 출판사에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여성지 포멧’으로 변신한 작가는 쫄티에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나타나 주위사람들의 연민과 걱정을 사기도 했다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가 맡던 여성지마다 폐간되었고, 마지막 출판사를 다니며 그는 죽기 살기로 소설에 매달렸다. 마지막으로 온 힘을 쏟아보자는 심정으로 퇴근 후 매일 3시간씩 글을 썼다. “밤마다 소설을 쓸 때, 창문 앞 책상 위에 놓인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잖아요. 그러면, 그게 어떤 느낌이냐 하면, 꼭 비행기를 몰고 막 밤하늘을 나는 느낌이에요. 아주 행복하고 자유로운 느낌. 그런 느낌이 밀려들 때가 있어요.” 그런 경험을 한 이후부터는 소설 쓰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소설을 쓴다는 사실과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계속 쓸 수만 있으면 좋았다. 독자나 평론가들의 평가나 책의 판매 부수 같은 데는 흥미가 없었다. “계속 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어요. 쓰는 순간 보상을 받는 거죠. 너무 좋아서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건이 안 되면 지금처럼 직장을 다니면서라도, 안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라도 쓰자, 하는 생각.” 당시 작가의 머릿속에 독자는 없었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한없이 건방진 말도 하고 다녔다고. 자신이 사전을 찾아가며 최선을 다해 쓴 문장을 독자도 사전을 찾아가며 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는 소설을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혼자’ 사전 찾아가며 읽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함께’ 읽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무진장 커졌어요. 아마 앞으로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아요.”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샘솟는다는 작가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소설을 ‘쓰는’ 일이다. 작품 발표 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정작 글을 ‘쓸’ 시간이 거의 없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전한 작가는 또 다른 ‘이야기’는 또 다른 소설이 나오면 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긴 ‘모노로그’를 마쳤다. 이어진 독자들의 질문 시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한 교사가 ‘소설가를 희망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작가는 20대 초반 지녔던 엄청난 열정을 떠올렸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열망만 품은 채 미숙하던 시절, 100전 100패의 그 시절에도 그는 ‘근거 없는 확신’만은 놓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게 되어 있다, 그렇게 살게 되어있는 사람이다, 하는 확신.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작가는 소설을 완성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다만 다음 소설은 이것보다 더 잘 쓸 것 같다는, 훨씬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라디오 피디가 꿈이라는 한 독자가 후일 자신이 진행할 라디오 문학 프로 진행에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말을 잘 못한다’고 답한(그러면서도 연락을 달라고 한) 작가. 하지만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진 그의 ‘이야기’를 들은 독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막힘없이 시종 온화하고 조근 조근한 목소리로 국경을 넘나들고 시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와 ‘소통’한 독자들은 앞으로 작가가 들려줄 말(=이야기)에 이미 목마른 상태다. 이러한 목마름을 느끼는 건 비단 그 자리에 초대됐던 독자들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소설 속에서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며 ‘염화미소’를 지은 수많은 독자들 역시 그러할 터다. | |||
| [오정아 시민기자 chanseull@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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